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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

[取중眞담] 임용성적표 공개 요구한 '이단 강사' 3인의 승리

이 사건은 우리 법인의 장훈열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입니다.
* 출처 : 오마이 뉴스 2003. 9. 1.
▲ 성종환·최문정·전혜진씨(왼쪽 부터)는 외대를 상대로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임용 과정 공개를 요구하며 1년6개월 동안 싸웠다. 이들 소송에서 이겼지만,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
ⓒ2003 오마이뉴스 박수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만큼의 고통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은 '희망과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갈을 남겼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 반기 든 '버릇없는 강사' 3인

성종환(44)·전혜진(39)·최문정(36). 이 세 사람은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노과 강사였다. 그러나 9월 새 학기부터 이들은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


이들이 강의를 빼앗기게 된 원인은 실력이 없다거나, 뭔가 결격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순전히 학교에 '반기'를 든 '버릇 없는 강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7월 31일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는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노과 강사인 원고 '성종환·전혜진·최문정', 3명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피고인 한국외국어대는 임용 최종심사결과표를 공개하라"고 밝혔다.

벌써 1년6개월이 지난 일이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신임교수 임용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3명의 박사가 교수 채용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대학과 법인에 결과 공개와 재심을 요구한 것은 2002년 3월이었다.

2001년 10월 한국외국어대는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전임교수 채용공고를 냈고, 당시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4명이 지원했다. 심사 결과 학교는 예상과는 달리 방아무개씨를 최종 임용대상자로 결정했다. 나머지 3명의 지원자와 통역번역대학원 내에서는 '뜻밖의 결과'라는 반응이었다.

지원자 4명은 모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해왔던 선·후배 사이로 서로의 경력과 연구실적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이들 3명은 고심 끝에 학교를 상대로 임용과정 공개를 요구했다.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기초심사, 외부심사, 공개강의 등 평가 과정에서 불공정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평가 과정에서 번역실적이나 공개강의, 외부심사 등에서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정된 교육공무원임용령 제4조 3항⑥(2002년 1월 1일부터 대학교원의 신규채용에 지원한 자가 신규채용에 관한 심사기준 및 지원자별 심사경과 등에 관한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에 따라 이들 3명은 심사 결과 공개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끝까지 이를 거부해 결국 법의 힘을 빌 수밖에 없었다.

2002년 5월 13일 심사기준 및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모두 이들 3명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결국 2심까지 판결까지 왔다.

한국외국어대는 2심 결과에 대해 상당히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대법원까지 가봐야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 교무과 관계자는 "학교에서 여러가지로 심사숙고하고 있다"면서 "아직 대법원까지 갈지 말지 최종적인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3인 대담기사 낸 <외대학보> 전량 강제수거

어쨌든 학교는 소송이 계속 진행되자 이들 3명에게 인사권을 행사했다. 소송을 시작한 이후 강의를 절반 이하로 줄이더니, 2003년 2학기부터는 아예 강의를 주지 않았다.

학교측의 '상식 이하'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3년 4월 16일 <외대학보>는 창간특집호로 '성종환·전혜진·최문정' 3명을 주인공으로 1면에 '선생님들, 힘내세요!'라는 화보와 함께 대담기사를 내보냈다. 신문이 배포된지 하루만에 학교는 이 신문의 전량 수거에 나섰다. 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낸 3명의 주인공이 <외대학보> 1면에 실리는 것을 학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통역대학원 원장님은 지금이라도 마음을 달리 먹으면 강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려고 했다면 아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성종환씨의 말이다. 이들 3명은 무엇보다 새 학기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전혜진씨의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학생들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자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한 학생들인데…. 짐을 정리하러 학교에 한번 들러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요. 예상했던 일이지만 왠지 현실이 되니 서글프네요."

성종환·전혜진·최문정, 이들 3명은 새 학기부터 지방에 있는 한 통역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강의를 하기 위해 왕복 4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에 뿌려야 한다. 그러나 '강의'는 그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일이다. 최문정씨는 말했다.

"학교를 상대로 싸우는 우리를 보고 '이제 그만 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용기를 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 분들이 참 큰 힘이 됐습니다. 학생들을 볼 수 없게 돼서 아쉽지만, 옳은 것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4만 '보따리 장사'의 희망

소위 '보따리 장사'라는 강사들은 모두 '공정한 임용제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한 임용제도를 만들기 위해 선뜻 행동에 나서는 강사들은 드물다. 대학 당국에 찍히면 영영 '이단아'로 남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 4년제 대학의 강사는 약 4만명에 이른다.

성종환·전혜진·최문정. 이들 3명은 길이 없던 땅에 길을 만들어 강사들에게 '희망'이란 선물을 안겼다. 그들은 잘렸지만, 결국 이겼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2003/09/01 오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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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04-10-27 [17:59] 조회 : 2874 추천 : 0 다운 : 0  MSIE 6.0(Windows NT 5.1) | 218.38.8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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